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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연주하시기에 편한 악기가 되고 싶습니다 | 테너 존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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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연주하시기에 편한 악기가 되고 싶습니다   |   테너 존 노

 

|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3>를 통해 결성된 ‘라비던스’라는 4인조 크로스오버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테너

|   존 노 – 테너

 

 

 

 

 


 

 

세계적인 악기사가 만든 명품 악기도 연주할 줄 모르는 어린아이가 들고 있으면 무용지물이다.

초등학생들이 쓰는 작은 피리도 유명한 연주자 손에 들리면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

금 그릇도 독을 담는 자에게는 독그릇이 되고, 질그릇도 약을 담는 자의 손에서는 생명을 살린다.

 

과연 ‘나’라는 악기는 누구 손에 들려서 연주되는 것이 좋을까?

‘나’라는 악기를 만든 분이라면 ‘나’를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나’를 가장 잘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하는 연주자,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여기 하나님이 연주하시기에 편한 악기가 되고 싶다는 성악가가 있다.

크로스오버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 3>를 통해 결성된 ‘라비던스’라는 4인조 크로스오버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테너 존 노 형제를 지금 공감한다.

 

 

 

 

 

 


 

 

[ Q. 요즘 삶을 날씨나 계절에 비유해 주신다면 어떨까요? ]

 

 

 

저는 지금 한창 여름을 보내고 있어요.

뜨거운 열정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죠.

 

물론 매일 뜨거운 태양 아래 있지는 않아요.

여름 장마철처럼 비 내리는 시간이 있어서 재충전을 할 때도 있어요.

 

퍼붓는 소나기조차 단비로 느껴집니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찬양하고 예배드리며 힘을 얻고 있죠.

 

요즘 무척 행복해요.

 

 

 

 

 

 

 


 

[ Q. 크리스천의 3대 영역하면 신앙, 일, 가정을 들 수 있는데요.

각 영역에서의 만족도를 동그라미, 세모, 가위로 표현하신다면 어떨까요? ]

 

 

 

 

가정은 동그라미예요.

부모님이 가정을 우선순위에 두시는 분들이라 서로 위로하고 기도하고 격려하는 집안 분위기거든요.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목회를 하시는데, 저를 잘 이끌어 주고 계세요.

 

일도 은혜와 축복으로 상상도 못했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비던스 활동과 솔로 활동을 같이 하고 있어서 정말 감사하죠.

당연히 동그라미고요.

 

신앙은 새로운 차원이에요.

활동하면서 하나님을 선포하고 싶은데 제약이 많더군요.

일단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하나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없으니까요.

찬양을 더 많이 하고 싶은데, 그것도 쉽지 않고요.

교회에서도 예전에는 청년 ‘노종윤’이었는데, 방송하면서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온전히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예배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세모로 할게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오늘 인터뷰가 참 좋네요.

하하.

 

 

 

 

 

 

 

 


 

 

[ Q. 2021년 지구상에서 ‘존 노’는 어떤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

 

 

 

 

하나님이 저를 지으신 이유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기 위함이에요.

제가 성악을 시작한 것도 그렇고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잘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기도하던 중에 <팬텀싱어 3> 오디션 소식을 들었고, ‘라비던스’라는 좋은 동역자도 만났죠.

제가 부르는 모든 노래를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느끼기 원해요.

하나님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던 어린 시절 꿈이 이제 막 이루어지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에 ‘라비던스’가 첫 번째 미니 앨범을 냈어요.

‘테두리’라는 곡인데요.

관계를 잘 유지하고 축복된 길로 가자는 메시지가 담긴 곡인데, 제게는 이 곡이 CCM같아요.

 

이제 곧 제 평생 첫 솔로 앨범도 나와요.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 음악까지 담았어요.

제가 살아오면서 저에게 힘이 되었던 노래들이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곡들이 대부분이고요.

 

저에게 테너는 첫 정체성이에요.

변화는 즐기되 변질되지는 말자,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클래식을 전공한 테너 존 노를 확실하게 보여 주고 싶어요.

 

 

 

 

 

 

 

 


 

[ Q. <팬텀싱어 3>를 통해서 ‘라비던스’라는 훌륭한 동역자들이 생겼어요.

‘라비던스’는 형제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어떻게 보면 형제들이고, 음악의 세계를 함께 항해하는 동료이면서, 평생을 같이할 친구들이죠.

같이 활동하면서 형제보다 깊은 관계가 되었어요.

 

욕심을 부리자면 세계무대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크로스오버 그룹이 되고 싶어요.

 

저를 포함해 세 명은 크리스천이고, 한 명은 저희가 전도해서 이제 마음이 막 열리고 있어요.

공연 앞두고 함께 기도하는데, 그동안 아멘을 하지 않던 친구가 지난 번 공연에서 입을 열어 아멘하고 화답하더군요.

 

마음이 열린 거죠.

함께 기도해 주세요.

 

 

 

 

 

 

 

 


 

 

[ Q. <팬텀싱어 3> 첫 무대에서 ‘The Prayer’를 불러서 큰 감동을 주었어요.

조회 수 2백만을 훌쩍 넘었던데요.

어떤 마음으로 부르셨나요? ]

 

 

 

 

녹화에 맞춰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오페라 무대가 끝나자마자 공항으로 갔고, 비행기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에서 도착하자마자 방송국으로 갔어요.

 

저녁부터 녹화를 시작했는데, 새벽 3시 넘어서 제 차례가 왔어요.

비몽사몽이었죠.

 

그래서 하나님을 더 의지했어요.

노래 자체가 기도하는 노래잖아요.

하나님께 찬양한다, 생각하고 불렀어요.

 

저의 정체성을 알린 노래이기도 했고,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죠.

 

 

 

 

 

 

 


 

 

[ Q. <팬텀싱어 3> 오디션에 응하기 전에 이미 성악가로서, 오페라 가수로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잖아요.

<팬텀싱어 3> 오디션 지원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

 

 

 

 

사실 그때 이 길이 맞는 건가? 기도하던 때였어요.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갈수록 힘들더라고요.

오디션 최종까지 가면 백인 테너와 제가 남게 되고, 결과는 늘 그들에게 돌아갔어요.

 

실력이 비슷하면 오페라 배역의 외모가 백인에게 더 어울리니까요.

주인공이 동양인 외모이면 몰입감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기도 했죠.

 

이런 와중에 <팬텀싱어 3> 맨해튼 오디션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도전했죠.

 

사실 그 즈음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한 번도 제 무대를 보신 적이 없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께는 제 무대를 보여 드리고 싶어서 방송에 출연하고 싶었어요.

 

 

 

 

 

 

 


 

 

 

[ Q. 어린 시절은 어떠셨어요? ]

 

 

 

 

 

교회 같은 가정이었어요.

 

부모님이 목사님이시고, 외삼촌과 고모부도 목사님이세요.

할아버지도 목사님이시다 보니 집이 그냥 교회 같았죠.

 

고조할아버지는 교회를 세우셨고, 증조할아버지는 6·25전쟁 중에 그 교회를 지키시려다가 순교하셨어요.

 

공산군이 증조할아버지를 교회 안에 가둬 놓고 불을 질렀거든요.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그 광경을 보고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셨대요.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저에게 “너에게는 순교자의 피가 흐른다”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 부담스럽기도 했죠.

 

미국에서 공부하셨던 부모님과 함께 6살에 한국으로 왔고, 자연스럽게 목회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고등학교 때 미국의 기독교 사립학교로 유학을 갔죠.

 

그때는 이민 목회를 하셨던 고모부 댁에서 생활하면서 학교에 다녔어요.

 

 

 

 

 

 

 


 

 

 

[ Q.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언제인가요? ]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갔는데, 언어도 잘 안 되고, 동양인은 저 혼자여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했어요.

 

그때 개척교회에서 목회하셨던 고모부 댁에서 생활하다 보니 새벽예배부터 교회 궂은일을 도맡아 했어요.

 

학교생활이 힘들다 보니 오히려 하나님께만 매달렸죠.

그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그 시절 경험한 하나님은 지금도 저의 가장 큰 위로자세요.

 

 

 

 

 

 


 

 

 

[ Q. 그때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어요? ]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늘 안아 주시는 분이었죠.

 

많이 기도하고 많이 울고 그랬어요.

 

고모부께서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비전을 구해야 한다고 하셔서 늘 비전을 놓고 기도했어요.

그러던 중에 노래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고, 찬양 사역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죠.

 

 

 

 

 

 

 


 

 

 

[ Q.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재능을 발견하고 성악을 하게 된 건가요? ]

 

 

 

 

고등학교 1학년을 힘들게 마치고 2학년이 되어서 학교 합창단 활동을 했어요.

그때 금발의 미녀 선생님이 지휘자로 오시면서 갑자기 아이들이 합창단에 많이 들어가더군요.

하하.

 

제가 노래를 잘하니까 관심을 받게 되었고 서서히 친구들이 생겼어요.

인기를 끌게 된 거죠.

 

한번은 합창단이 메릴랜드 주 대회에서 대상을 탔어요.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교회음악축제’에 초청받아서 로마에 가게 됐어요.

고3이 되는 여름이었죠.

 

합창단이 로마에서 푸치니의 ‘미사곡’을 불러야 해서 푸치니를 공부했어요.

 

그러다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른 ‘네순 도르마’를 듣게 된 거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영상 밑에 “당신의 목소리를 들으니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라는 댓글이 달려 있더군요.

 

나도 이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성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죠.

 

 

 

 

 

 

 


 

 

 

[ Q. 고3이 되는 시기였으니, 음대 입시 준비가 쉽지 않았겠는데요? ]

 

 

 

 

합창단 지휘자님도 너무 늦었다고 하셨어요.

수소문해도 입시 준비를 시켜 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때 기도를 많이 했죠.

고모가 쌀국수를 드시러 갔다가 아르바이트 학생이 성악 전공 대학원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 레슨을 부탁하셨어요.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석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요.

 

매일 새벽에 교회 가서 예배하고 노래했고, 학교 끝나고 다시 교회 가서 노래하고 찬양하고 밤까지 기도했어요.

석 달 내내 그렇게 살았죠.

 

그렇게 준비하고 존스 홉킨스 대학 피바디 음대 한 곳만 지원했어요.

뜻이 아니면 신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합격했어요.

 

부모님이 어렵게 1년 치 학비를 모아 주셨지만, 그 다음 해에는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갔어요.

 

 

 

 

 

 


 

 

 

[ Q. 성악병으로 갔나요? ]

 

 

 

 

성악병은 오디션도 봐야 하고, 콩쿠르 입상 경력도 있어야 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논산 훈련소로 갔어요.

 

탱크병이 됐죠.

 

감사하게도 행정보급관이 신실한 기독교인이어서 매주 교회에 갔고, 특송도 하고 찬양 인도도 했어요.

평소에는 혼자 탱크 청소할 때 노래 연습하고 그랬죠.

 

그렇게 1년이 지나고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요.

피바디 음대는 1년 이상 휴학이 안 되어서 퇴학 처리가 된 거예요.

 

재입학하려면 영상으로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죠.

 

군 복무 휴학도 인정을 안 해 준다고 해서 부랴부랴 휴가 내고 서울에 와서 급히 오디션 영상을 만들어 학교로 보냈어요.

 

군복 입고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불러서 보냈는데, 마침 면접관 교수님 중에 베트남 전쟁 성악병 출신이 계셨어요.

그분이 군복 입은 저를 적극 추천하셔서 오히려 장학금을 받게 됐죠.

 

그래서 제대하고 다시 입학해서 남은 기간은 장학금을 받고 편히 다녔어요.

 

 

 

 

 

 

 


 

 

 

[ Q. 하나님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셨네요. ]

 

 

 

 

그때도 기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아버지께서 군에서 받은 월급이 많지는 않지만 십일조를 내는 게 어떻겠냐고, 분명 100배로 축복하실 거라고 하셨어요.

 

물론 그런 걸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밀린 것까지 계산해서 기꺼이 드렸어요.

나중에 보니 제가 받은 장학금이 딱 100배였어요.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던 모양이에요.

하하.

 

 

 

 

 

 

 


 

 

 

[ Q. 남은 기간은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그 뒤로는 승승장구하셨나요? ]

 

 

 

 

석사 과정을 줄리어드 음대로 갔어요.

미국에서는 오페라 하면 뉴욕이기 때문에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었거든요.

 

피바디 1학년 때 오페라 무대에서 단역으로 선 경험이 있는데,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아서 꼭 오페라를 하고 싶었어요.

 

줄리어드 음대에서 유망주 소리를 들으며 장학금 받고 들어갔죠.

 

그때 욕심을 부린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에 여러 선생님께 코칭을 신청했고, 기회가 되는대로 무조건 공부하고 노래했어요.

대 성악가들에게 매일 코칭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빨리 성장하고 싶었나 봐요.

졸업 앞두고 결국 성대에 물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일주일이 지나도 낫지 않으면 평생 간다고 했는데, 결국 회복되지 않았죠.

 

 

 

 

 

 

 


 

 

 

[ Q. 그 시기를 어떻게 보내셨나요? ]

 

 

 

감사하게도 노래는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노래를 한 번 하면 사나흘은 소리가 안 나왔어요.

말 한마디 못하고 쉬었다가 노래하고 그랬죠.

 

그래도 그때 솔로로 카네기홀 데뷔도 했는데, 노래 부르고 또 한참을 쉬어야 했죠.

 

그러다 보니 제 사정을 아는 교수들은 이제 제가 더 이상 노래를 못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슬슬 태도가 바뀌더군요.

 

그래도 신앙생활은 열심히 했어요.

맨해튼 온누리교회에 다니면서 순장도 하고, 가스펠 콰이어 지휘도 했어요.

 

그때 줄리어드 한인 기도모임을 제가 만들었어요.

기도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아예 그 모임을 만들었죠.

 

음대생들은 아무래도 솔리스트의 정체성이 강하다 보니 개인 활동이 많은데, 그래도 하나님을 찾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도 그랬고요.

 

지금까지 모이고 있다고 들었어요.

정말 감사하죠.

 

 

 

 

 

 

 


 

 

 

[ Q. 물혹은 치유가 된 건가요? ]

 

 

 

 

졸업하자마자 한국으로 와서 수술 받았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조금만 잘못되면 평생 노래를 못한다고 들었거든요.

 

어머니는 늘 이 말을 해 주셨어요.

 

“넌 오페라 가수이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져가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오페라를 못 해도 어떻게든 하나님이 쓰실 거다.”

 

그 말에 위로를 얻어 마음 편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죠.

다행히 수술은 잘돼서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이후 학교 자체적으로 오페라단이 강한 예일 음대에 장학금 받고 들어갔어요.

 

예일 음대에서 한창 공부하고 있을 때 <팬텀싱어 3> 오디션 소식을 들었고요.

 

 

 

 

 

 

 


 

 

 

[ Q. 사실 성악가들에게는 콩쿠르가 일상이잖아요.

상도 많이 탔다고 들었어요.

그중에서 3개만 자랑해 주세요. ]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 뉴욕 대회에서 입상했어요.

뉴욕이 경쟁률이 가장 심하거든요.

 

커리어 브리지도 우승했고, 아나폴리스 오페라 콩쿠르에서도 2위를 했었죠.

 

그때마다 하나님이 늘 함께하셨어요.

 

 

 

 

 

 

 


 

 

 

[ Q. 앞으로는 어떤 비전을 품고 있나요? ]

 

 

 

 

제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고 싶어요.

 

저는 하나님이 연주하시는 악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이 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길 소망해요.

 

감사한 것이 하나님을 모르는 팬들도 노래를 들을 때 평안이 오고 울컥한다고 그러더군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무언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하나님이 편하게 연주하실 수 있는 악기로 쓰임 받고 싶어요.

 

 

 

 

 

 

 


 

 

 

[ Q. 인생의 희로애락을 듣겠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

 

 

 

요즘은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정말 기뻐요.

무대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니까요.

 

예전에는 저를 보기 위해 공연에 오는 분들이 한 명도 없었어요.

작품이 좋아서 오는 거였죠.

 

이제는 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공연에 오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해요.

그분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지금이 가장 기뻐요.

 

 

 

 

 

 


 

 

 

[ Q. 화나고 억울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

 

 

 

 

우여곡절을 겪던 순간순간이 다 그렇죠.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아요.

 

그 순간 분명히 힘들었던 건 아는데, 지금 억울함이나 분노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이 감사할 뿐이죠.

 

그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렸더니 다 씻어 주셨나 봐요.

 

그 순간은 힘들어도 하나님께 매달리면 상처는 남지 않는 거 같아요.

 

 

 

 

 

 

 


 

 

[ Q.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요.

 

항상 노래 한 곡 들려드리겠다고 했는데 한 번도 들려드리지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 품에서 더 좋은 노래를 듣고 계실 거라고 믿어요.

 

 

 

 

 

 

 

 


 

 

 

[ Q.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

 

 

가장 즐거운 순간도 무대 위에 있을 때예요.

 

제가 말을 잘 못해요.

그런데 이상하게 노래할 때는 제 감정과 진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를 좋아하죠.

 

 

 

 

 

 

 

 


 

 

 

[ Q. 인생을 한 권의 책으로 본다면 다음 챕터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거 같은가요? ]

 

 

 

저도 기대가 커요.

 

물론 기대가 큰 만큼 두려움도 크긴 해요.

 

이제 정말 음악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뻐요.

 

궁극적으로는 찬양 사역을 하고 싶어요.

 

<팬텀싱어 3>에도 크리스천이 많은데, 그들과 찬양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찬양 콘서트부터 열고 싶어요.

 

기도해 주세요.

 

 

 

 

 

 


 

 

 

 

[ Q. 30년 인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Q. 「빛과소금」 독자들에게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해 주세요. ]

 

 

 

“혹시 오늘 하루 사랑한다는 말을 얼마나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으로 복음을 완성하셨잖아요.

저도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이 자리에 올 수 있었고요.

 

힘들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힘이 나요.

서로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힘을 주는 그런 사랑스러운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도 멤버들과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요.

 

 

 

 

 

 


 

- 빛과 소금 2021년 8월호, People

 

 

 

 

 

 

[ 존 노 (John Noh)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Sand Art Clip] ]  

존 노 (John Noh)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Sand Art Clip]

 

 

팬텀싱어3의 히어로, 존노

그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세계적인 오페라 전문 잡지 "Opera News"에서 "감미로운 테너" "천부적인 테너"로 극찬을 받으며, 팬텀싱어의 히어로로 다가온, 테너 존 노가 발표하는 첫 디지털 싱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존스 홉킨스 대학교 피바디 음악대학 성악과 졸업, 줄리어드 음악원 석사학위 장학 졸업과 동시에 카네기홀 솔리스트 데뷔, 예일대학교 음악대학원에서 전액 장학생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테너 존노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알렉산드로 푸시킨의 시에 아트팝의 개척자 김효근씨가 작곡과 번역을 통해 탄생한 곡이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미래를 꿈꾸자는 시인의 목소리가 따뜻한 선율과 함께 존 노의 진솔한 음성으로 전해온다.

 

 

 

 

CREDITS

 

김효근, 작곡

알렉산드르 푸시킨, 시

김효근, 역시

엄기환, 편곡

디토오케스트라 / 이병욱, 지휘

존 노, 테너

 

Executive Producer : Clayton Jeffry Jin @Warner Music Korea

Project Director : 조희경 @Warner Music Korea

Producer : 김진환

Orchestra : Ditto Orchestra

Conductor : 이병욱 (Christopher Lee)

Recording Producer & Tonmeister : 최진 @Sempre La Musica

Orchestra Recording Engineer : 김경욱, 박하영 @Sempre La Musica

Orchestra Editing : 박하영 @Sempre La Musica

Vocal Recording Engineer : 정호진 @SoundPool Studios

Mixing & Mastering : Comuskin Music

Artist Management : ㈜크레디아뮤직앤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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