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를 넘어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나 세상을 바꾼 그리스도인,
영국의 양심이라 불리우는 윌리엄 윌버포스의 브런치입니다.
여기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무역업으로 재벌이 되었고,
정계에도 진출하여 두 번이나 시장을 역임하였습니다.
아버지 또한 대를 이어 부유한 상인이었는데,
그가 9살 되던 해 사망하여,
남자는 큰아버지 손에 길러졌고
부유한 자산가인 큰아버지의 유산까지 물려받게 됩니다.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할아버지가 후원해주고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재산으로 꽃길이 보장된 이 남자
그리고
자신이 가진 이 모든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바친 남자
오늘은 영국의 노예제도를 폐지시킨
위대한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윌버포스는 1776년, 케임브릿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에 입학합니다.
그는 막대한 부에 취해 술과 도박 및 온갖 유흥에 빠졌고
공부도 대충했으며, 대학에서 학점은 바닥이었습니다.
씀씀이가 만수르에 버금갔던 그는
단점도 많았지만,
노력없이 물려받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귑니다.
꼭 돈 때문이 아니라도,
신이 주신 재능인 말솜씨 덕분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윌버포스의 친구 중에는
24세의 나이로 영국 최연소 수상이 된
윌리엄 피트도 있었습니다.
그는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수저였던 것이죠.
이쯤 되면 타락한 자본가로 전락하기 딱 좋은 환경인데,
그에게는 큰아버지가 물려준 한줄기 빛이 있었습니다.
바로 복음주의 신앙이었습니다.
오늘날 감리교는
연세대, 이화여대 등이 소속되어 있는
기독교의 대표적인 교단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윌버포스 당시의 영국에서는
감리교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
존 웨슬리를 비롯하여 감리교도들은
교리에 엄격한 별종 취급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윌버포스의 할아버지는
복음주의자와 어울리면 재산을 안 물려준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이 엄포에 복음주의를 내려놓은 윌버포스는
여전히 흥청거리며 살았고,
1780년, 21살의 나이에 하원의원에 당선됩니다.
당시는 매표행위가 관행이었기에
별다른 정치의식이 없었던 윌버포스도
가문의 재력으로 의원에 쉽게 당선됩니다.
할 일이 딱히 없어서 정치를 하게 된
이 부잣집 도련님.
그런데 뜻하지 않은 행운은 계속 따릅니다.
그의 절친인 윌리엄 피트가
24세의 나이로 최연소 영국 수상이 되면서
이 문제아의 정치적 입지는 엄청나게 단단해집니다.
완벽한 빽이 생긴데다,
막대한 부와 천부적인 웅변 실력까지 갖춘 윌버포스.
이제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로 보였습니다.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아서,
인생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풀리는
이 철부지 도련님.
그가 위대한 그리스도의 길을 가게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1784년 전까지는 말이죠.
1784년, 선배인 아이작 밀너와
유럽 대륙 여행을 하게 된 윌버포스.
그는 밀너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간증 거리가 될 만한 엄청난 사건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여행 이후 윌버포스는 방탕했던 생활을 뉘우칩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술과 도박을 끊습니다.
완전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그는
아예 성직자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윌버포스의 동료들은
정치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을 실천해보라고
그에게 권유합니다.
바로 평신도 사역자 말이죠.
이렇게 위대한 정치가인
윌리엄 윌버포스의 인생 제2막이 시작됩니다.
윌버포스는 정치를 통해
복음적 사명을 이루려고 했고,
그의 가장 큰 목표는 노예제 폐지였습니다.
우리가 노예 해방의 선구자로 알고 있는
에이브라함 링컨보다 한 세기나 빠른 시기였죠.
17세기 ~ 18세기 영국은
세계 최대의 노예무역국이었습니다.
노예무역을 폐지하자는 말은,
지금으로 치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IT산업을 폐지하자는 말과 같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납치당한 흑인들은
짐승 같은 대우를 받았고,
대양을 건너는 동안 많은 수가 죽었습니다.
이러한 참상을 본 윌버포스는
오크나무 아래에서 윌리엄 피트와 논의하다
노예제도를 폐지할 것을 결심합니다.
윌버포스는 후에 '클래펌 파'라고 불리게 될
각 분야의 동지들을 규합합니다.
어벤져스만큼 막강한 실력을 갖춘 클래펌파는
주위의 비난과 생명의 위협에도
노예제 폐지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갑니다.
하지만 노예무역 산업은
기득권의 이익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노예무역 폐지 법안은 11번이나 좌절을 겪었습니다.
오랜 투쟁으로 지친 윌버포스는
척추 장애와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건강이 악화되었고,
노예무역 폐지를 위해 자신의 사재를
아낌없이 내놓은 덕분에
윌버포스의 재산도 바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인맥과 재산,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소명에 아낌없이 던진 결과는
결국 결실을 맺습니다.
1807년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통과되었고,
1833년에는 노예제도 자체가 폐지됩니다.
윌버포스는 병상에 누워 이 소식을 듣고
사흘 뒤에 기쁨 가운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윌버포스와 클래펌파가 이룬 업적은
노예제도 폐지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방만했던 영국 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윌버포스는 다양한 시민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오늘날 윌버포스는 영국을 변화시킨
위대한 신앙인으로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나누지 못하여,
주님 앞에서 돌아선
성경 속 부자 청년을 기억하시나요?
여기 또 다른 부자 청년, 윌리엄 윌버포스는
비슷한 갈림길에서 주님께 모든 것을 던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부잣집 망나니 도련님이 주님과 동행했고,
그 결과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로 잡았습니다.
윌버포스 만큼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같이 이런 갈림길 앞에 섭니다.
주님의 길과,
나의 길.
오늘은 이 갈림길에서
주님 쪽으로 살짝 치우쳐 걸어가 보면 어떨까요?
그 길은 우리의 생각보다 험하진 않을 겁니다.
주님이 먼저 걸어가신 길이니까요.
[브런치TV 4K] 세상을 바꾼 금수저 이야기 – 영국의 양심이라 불리우는 윌리엄 윌버포스의 브런치
[Brunch TV 4K] The story of a golden spoon that changed the world - Brunch of William Wilberforce, British conscience
[음악]
1. 축복하노라
(Vn. 이지현)
2. 사랑합니다
(fl. 박효진, Va. 오세은, Vc. 김나연, Pf. 홍사현)
3. 거룩하신 하나님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by 솔리데오 글로리아)
[Music]
1. I Will Bless You
2. Father, I Love You More Than Anything
3. Give Thanks & Thanks to God